Somnium Astri INFO

[슈와마/트3] 스토니 신간 예약받습니다. =D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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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금 예약폼 ▶ http://naver.me/FNEk0vmK



11월 17일에 열리는 슈와마(스팁토니) 온리전에 나오는 신간 안내입니다.

616 유니버스 설정을 기반으로 하는 멋진 징조들 Good Omens AU

천년 넘게 지구에서 아웅다웅하면서 지내는 천사 스티브와 악마 토니 나옵니다.

전반적으로 가벼운 분위기며 시리어스한 내용은 없습니다.


샘플은 조금씩 추가 예정이며, 샘플로 사용된 파트는 퇴고 이후 일부 수정 및 추가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SAMPLE ===============



어디서 폭탄 하나 안 떨어지려나. 아니면 빌런이라도 뚝 떨어지던가-.


이런 날은 모름지기 어느 정도의 소란이 일어야 마땅하거늘 하늘은 야속하게도 가장 우매한 어린 자식들에게 관대한 탓에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이지 빌어쳐먹을 정도로 좋은 날씨였다. 휘익 낮게 휘파람을 불자 방금까지만해도 눈썹 하나 꿈쩍 안하고 팔랑 팔랑 책을 넘기던 잘생긴 얼굴이 고개를 들었다. 토니. 젠장맞게도 본 모습과 가장 흡사한 상대의 육신은 이제 숫자를 세는 것 자체가 지겨운 지상의 삶에서 훌륭할 정도로 토니의 취향이었다. 심지어 목소리마저도!


코끝에 살짝 흘러내린 멋들어지게 쓴 토니의 선글라스를 긴 손가락으로 들어올려 제자리를 찾게 해주는 무심한 행동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연분홍빛의 한숨이 들렸다. 또 기사 나겠네. 토니의 가벼운 손짓으로 지금의 대화는 들리지 않고 '일상적'인 대화가 사람들의 귀에 들릴테니 지켜보는 관객들은 분명 저마다 상상의 소설을 쓰거나 혹자는 그에 준하는 기사를 쓸게 틀림 없었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게 아니야."

"알았어."


일부러다. 인간의 귀에 들리게끔 불필요한 진담을 말하는 행동에 토니는 혀를 찼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자는 천사가 아니라 자신보다 더한 악마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내가 속고 지낸 건가. 투덜거리며 테이블 위로 얼굴을 박은 토니의 동그란 정수리 위로 청량한 웃음기가 떨어졌다. 그 긴시간 동안 스티브가 저를 다루는 법을 터득했을 거라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토니는 연신 입을 삐죽거렸다. 텀블러에 오늘 자네와 나의 연성이 가득할 거야. 자네 그런 것도 찾아 보나? 어차피 껍데기는 내가 아닌데 알게 뭐야. 동그랗게 떠진 푸른 눈에 그제야 심드렁하게 변했다. 취향은 무섭다고 꼭 이렇게 초반 십분 정도는 넋을 놔야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제 이런 일련의 과정이 익숙해진 스티브는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고 뒷커버가 닫히는 순간 내밀어진 커피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었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팁을 내미는 스티브의 흰 손을 가만히 보던 아르바이트생은 너무하네 나는 안봐주고~ 라고 말하면 동시에 팁을 내미는 토니의 목소리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분명 오늘도 스티브의 팬이 수백명 늘어났을 거라고 장담하며 토니는 후다닥 제 동료에게 달려가서 무어라 말을 하는 젊은 청년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일이야."

"뭐 빌런이야 항상 나타나고. 그러고보면 그 녀석들 참 성실하네. 매일같이 그러고 있으니."

"토니."

"워, 진정하라고 캡."


살며시 한쪽 눈썹을 끌어올리는 스티브에 토니는 과장되게 호들갑을 떨었다. 천사라 재미없는 건가. 더 끌었다가는 여러 의미로 호되게 혼이 날 듯 하다. 습관처럼 잔 위를 손가락으로 빙그르 돌리며 자신들의 '말'을 공간과 차단한 토니는 이윽고 입술을 열었다.


"도움이 필요해."

"자네인가 아니면 '너'인가?"


정확하게 육신과 그 안에 있는 실존하는 자신의 모습을 나누는 목소리는 단호하기 짝이 없다 못해 차갑다. 이미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었는지 스티브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더 짙고 푸르렀다. 또 사고쳤나? 누가 들으면 저 혼자 사고치는 줄 알 정도로 딱딱한 목소리에 토니는 잠시 울컥했지만 지금 도움이 필요한 건 자신이었다. 지고 들어가는 싸움에 애써 오기를 부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물쩡 거리는 토니가 답답했는지 스티브는 책을 테이블 한쪽으로 밀어버리고 의자를 토니쪽으로 가깝게 이동했고, 당연히 제대로 된 대화를 들을 수 없는 주변 관객들 사이에서 소근거림이 더욱더 커졌다.


"자네 또 사고 쳤나?"

"아니 내가 무슨 매번 사고만 치는 줄 알아?!"

"글쎄. 악마는 사고치지 않는다는 문장만큼 재밌는 문장은 없을 것 같군."


단호한 목소리에 토니의 미간이 살풋 찡그려졌다. 사실이니 반박할 말도 없다. 주변에는 어떻게 들리는지 주변의 앉은 사람들의 낮은 웃음소리에 토니는 보란듯이 코웃음을 쳤다. 이래서 인간들은 안된다. 겉보기 등급에 홀라당 넘어가서 무슨 말을 해도 좋게 봐주니. 기분좋게 부는 바람에 따라 살랑 살랑 흔들리는 금발에 저도 모르게 누그러진 자신을 향해 삐죽거리며 토니는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그림으로 그린듯한 얼굴 위로 드리워진 구름은 절묘하게 그림자를 만들었고 일순간 진지하게 고뇌하는 조각같은 남자의 얼굴을 만드는 조화에 토니는 역시 신은 그를 편애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뭐 별건 아니고 모델이 되어달라는 건데..."

"?"

"사업적인 제안이긴 한데 사적인 제안이기도 하지. '시선'을 끌 필요가 있거든."


새끼 손가락을 치켜들자마자 묘한 한숨이 마음에 들어 토니는 결국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전자만이면 몰라도 후자가 포함된 이상 그는 거절하기 힘들다. 예전부터 그래왔다. 스티브와 토니의 관계라면 이따금 소원해질 수 있지만 그 것이 아주 오랜 시간 서로 알아 온 '천사'와 '악마'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랬다, 지금 이 잘난 껍데기를 뒤집어쓴 두 남자는 인간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였다.


스티브 로져스는 천사, 토니 스타크는 악마.

둘은 천년도 더 전부터 그들의 신의 명으로 지상에 파견된 이들이었다.



-------------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



지상에 파견된 천사나 악마는 의외로 제약이 없지만 동시에 사소하게 신경 쓸 것들은 많았다. 요컨대 과하게 주어진 능력은 족쇄라는 말이었다. 기적을 행하거나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건 상관없다. 다만 목적에서 벗어난 과도한 생명 살해나 아주 큰 줄기의 흐름을 어그러뜨리면 꽤나 골치 아픈 행정 절차를 거쳐야 했다. 수천만 마리의 개미를 죽였다고 백년간 자신의 능력 사용 금지라는 처벌을 받은 악마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한 때 수십억의 인간을 절반 가까이 없앴던 적도 더러 있던 과거와 비교하면 굉장히 비합리적인 처사이지만 충분히 납득 가능한 증거를 기반으로 한 판결이기에 결국 그 악마의 변론은 먹히지 않았다. 요컨대 불합리성이란 비단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 토니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다. 물론 악마적으로 긍정적인 면에서 말이었다. 공식적으로 인간계의 파견된 악마 중에 가장 긴 근속연수를 자랑하기도 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실적을 자랑했다. 이따금 일으키는 변덕이나 기이하고 무모한 행동마저 허용이 되는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천사와 악마가 궁극적으로 갈라지던 시절 다들 그렇겠지만 토니 역시 한 때 천사였다 악마가 된 자였다. 딱히 악한 일을 했다기보다 그저 흥미 본위로 움직이다 어느 날 보니 날개깃이 까맣게 변해버렸다. 물론 흔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하지 않는, 독특한 토니의 과거는 그의 모든 기행을 납득시키기 충분한 이유가 되곤 했다. 그런 토니가 한 순간의 변덕스런 결정으로 꽤나 고전적인 방식을 이용해 인간 사회에 융화됐을 때 인간 사회에 있는 악마들 사회에서 큰 이슈거리가 됐다. 그는 인간으로 치면 스타에 가까웠다. 몇 십 년 뒤의 현재인 20XX년까지 계속 쓰고 있는 토니라는 이름을 가진 육신은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악마가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에 관한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결말의 한계점은 언제나 존재했다. 그런 면에서 토니는 누구보다 완벽함을 자랑했다. 명화와도 같은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일. 천사조차-물론 스티브는 아니었다.- 그의 업적을 보면서 한 폭의 그림이라 할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답게 조성된 계획은 아는 이들이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역작중 하나가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던 참이었다.

계기는 아주 우연했다. 1960년 3월 소련이 핵실험 중단에 동의했다는 소식에 아쉬워하는 동료들의-연대감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비즈니스적인- 한탄을 흘려들으며 토니는 영화, 벤허의 수상을 기뻐했다. 전쟁과 경제적 위기 속에서도 인간은 유희를 찾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열일곱 번째로 진행된 골든 글로브는 작년까지만 해도 매해마다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때와 달리 TV로 대신했다. 별 다른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정체를 들키면 귀찮은 상대가 그 자리에 있었다. 싸움을 거는 상대에게서 도망치는 건 본인의 스타일은 아니지만 지상에서 활동을 하려면 이 무거운 육신이 필요했고, 공교롭게도 악마는 이런 인간의 육신을 허가 받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 점에서는 참 천사가 그리웠지. 눈을 가늘게 뜨던 토니는 카메라 한가득 잡히는 멋진 미인의 모습에 낮게 휘파람을 불렀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선호하는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의 보랏빛 눈동자나 고혹적인 모습은 심금을 울리기 충분했다. 그리고 죽은 지 삼십년이나 된 옛 인간 친우의 글로 여전히 외설 논쟁을 벌이는 신문을 손에 쥔 채,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보면 낄낄 거리던 참이었다. 물론 친우의 죽음은 친절하게 안배하고 지옥으로의 편도 티켓을 끊는데 일조한 이는 바로 토니 자신이었다. 인간의 상상력은 조그마한 머리통만큼이나 빈약해서 천국이라고 비단 행복한 것만은 아니고, 그렇다고 지옥이라고 해서 불행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따금 인간들 중에서는 천사나 악마를 만나도 제 호기심을 주체 못하는 이들이 존재했고, 방금 토니가 말한 인간들의 논쟁거리의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토니가 악마라는 걸 깨닫자마자 냉대하기다보다 지옥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일사천리로 자신의 재능을 조건으로 계약했을 때 솔직히 환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30년 당시에는 그동안에 비하면 소소한 결과물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지만 몇 십 년이 흐른 뒤 인간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된 그의 작품으로 인해 조금 늦게 서야 토니는 제 결과물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두둑한 수당을 받았다. 애초에 시간의 흐름과 무관한 존재인 만큼 그 정도의 지연쯤은 별거 아니었다.

다시금 생각해도 이 모든 일의 원인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꽤 오래 머물렀던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왔지만 토니의 구미를 자극하는 것들이 없었다. 분명 여기저리 널려있는 흥미로운 것들은 많았지만 그의 탐미적인 부분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역시 이탈리아로 갔어야 했나 고민하던 찰나 그는 토니의 눈을 즐겁게 했던 미인에 이어 TV 속에서 잡히는 한 남자를 봤다. 그래, 저 자 때문에 이번에는 시상식에 직접 가지 않았지. 골든 글로브에서 제법 길게 비친 남자는 곧바로 토니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졌다. 인간의 죽음이란 토니에게 덧없는 것이지만 얼마 허락되지 않는, 그의 정체를 알고서도-이건 천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존재는 매우 드물었다. 그래서 앞서 말한 인간 친우인, L의 죽음은 토니를 잠시 동안 실의에 빠지게 만들기 충분했고 덕분에 그의 공적은 삼십 년 동안이나 잠잠했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깊은 심로에 빠졌던 토니의 눈에 들어온 건 ‘Hell's Angels’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자신들의 눈길을 끌기 충분한 어떤 영화였다. 그래, 미국으로 옮기자는 충동적인 결정을 하게 만든 건 바로 이 영화였다. 물론 토니에게 엄청난 감명을 줬다기보다 순수한 감탄사를 낳은 정도였지만 그러한 사소한 것들은 늘 그랬듯 모든 일의 시작에 있어 중요하지 않았다.

하워드 스타크라고 했던가. 꽤나 독특한 영혼이라 관심을 가졌지만 손을 대지 않아도 흥미롭게 흘러갈 인간이라 그대로 두고 잊어버렸다. 하지만 두 번이나 다가온 매력적인 영혼을 거부하는 건 악마로서 할 짓은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은 아니지만 아주 오랜만에 토니는 큰 공을 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이제 한낱 개개인의 객체(인간)를 타락 시킨다는 건 그들의 흐름에 뒤쳐진 행위였다. 무릇 인간에게 거대한 악을 뿌리고자 한다면 그들과 같은 시선에서 마주봐야 하는 것.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가장 너른 범위를 아우르려면 자연스러운 인간의 배경을 만들어야 한다. 스타크라는 성도 이 이름에 제법 잘 어울리지 않겠는가? 토니는 화면 속에서 이제 슬슬 사라져가는 남자를 보며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하여 토니의 이름 뒤에 스타크라는 성이 붙은 과정에 대한 설명은 바로 위와 같다. 물론 어떻게 하워드 스타크의 아들이 되었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과정은 악마로서의 중요한 계약 과정이니만큼 오로지 토니의 기억 속에만 오롯이 남았다. 인간의 몸을 빌려 태어날 때 철저하게 제한되는 천사와 달리 악마는 본인의 능력을 제외하고는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서서히 근대화가 된 인간들은 이제야 깨달은 듯 했지만 삿되이 부르기조차 뭐한 신은 약자에게 지극히 관대했다. 그래서 모든 지상의 생명체들이 공통으로 겪는 유아기부터 성인이 되기 이전까지의 인간들은 함부로 휘두르는 건 저어했기에 정작 아는 건 많아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정말이지 성장한다는 감각은 무척이나 생소해서 토니는 살포시 눈매를 찌푸렸다. 인간의 육체는 매우 불필요했지만 그 중에서도 아이의 육신은 지극히 연약하고 소모적이다. 본인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지만 아쉬움을 지울 수는 없었다.

토니는 곧고 가는 새카만 머릿결을 쓸어 올렸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단 말이지. 말랑말랑한 손바닥하며 아직 무거운 머리 때문에 균형을 쉽게 잃고 마는 작은 몸은 분명 독립적인 개체임에도 생물학적 부모의 유전자를 그대로 닮았다. 때 아닌 자아도취에 빠져 저를 부르는 부모의 소리를 듣지 못한 토니는 머리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와 함께 덜렁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토니.”

스위티 하고 달달하기 그지없는 지칭어와 함께 토니를 안아 올린 건 토니 스타크라는 이름을 가진 이 육신의 어머니였다. 몇 번이고 거울 앞에서 어정거리는 토니를 발견하고 뭐가 그리 좋은지 환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에 토니는 빙긋 웃었다. 오래전 스티브가 태초의 인간이었던 그들이 헐벗은 채로 추운 곳으로 쫓겨나는 게 안타까워 저도 모르게 화염검을 내줬다는 마음은 잠시나마 이해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자연스럽게 수면을 요구하는 어린 육신의 요구에 따라 토니는 하품을 했다. 그래서 바로 뒤를 따라 들어온 하워드가 들고 있던 보고서를 확인하지 못한 건 그의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




신은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임한다고 악마에 대응하기 위한 대비책으로 천사는 인간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했다. 때문에 오히려 인간 생활 저변에 깊이 침투하는 건 악마보다는 천사였다. 물론 이에 항변하자면 인류는 태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랬듯 유혹에 약했고 동시에 구원을 바라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악마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 탓에 지상에서 쓸 수 있는 힘의 한계는 악마보다 더 강한지라 파워-문자 그대로 물리적인 힘의 사용이다-면에서 한참이나 약했다. 그래서 대신 한 가지 얻은 이점이 있는데 악마보다 더 많은 동조자 혹 이해자를 얻는 일이 허용됐고-이른바 정체를 밝혀도 문제없는, 물론 엄준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육체를 가지는 일도 매우 쉬었다. 그래서 스티브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사회에 녹아들 때만해도 토니와의 육체적인 질긴 인연을 가질 거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난 천 년간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났다고 매번 보는 이웃사촌인 그와 가깝게 지내는 건 사실이지만 어찌됐든 둘 사이에는 천사와 악마라는 간극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걸 인간이라는 육체에 겹겹이 얽힌 인연에 서로가 걸려 단박에 부셔질지는 몰랐다. 이번 일로 토니에게 된소리를 했지만 스티브도 딱히 뭐라 할 입장은 아니었다. 인간사에 대한 토니의 직접적인 개입은 계획적이었지만 스티브는 그에 비교하면 충동적일 따름이었다. 토니가 사연을 알았다면 단순히 잔소리로 끝날 정도가 아닌 일이었다.



그러니까 시작은 이랬다.

인간은 굳이 악마가 나서지 않아도 저들끼리 혼란을 일으키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천사들은 악마들보다 더 잦은 인력난에 시달렸다. 그 날 따라 조금 지친-스티브는 나중에야 자신이 지극히 인간적인 사고방식을 하던 걸 인정했다.- 그는 어느 허름한 교회 아래에 잠시 자신의 몸을 뉘였는데 그 곳에서 흔하지 않는 성령을 볼 수 있는 이와 마주했다. 스티브는 자신의 정체를 들킨 것보다 몇 백 년 만에 본 성스런 능력을 가진 인간에 대해 감탄했고, 그로 인해 자신을 보며 거의 쓰러질 기세로 우는 여인을 달래느라 고생을 했다. 그녀는 신대륙과 상당히 동떨어진 억양으로 말을 했고, 이내 아일랜드에서 이주해온 이민자임을 알았다. 생활고에 시달려 고단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스티브를 보는 파란 시선만은 무척이나 깨끗했다. 토니가 영국에서 있었을 적 아일랜드에 머물렀던 스티브는 세계 1차 대전 무렵 미국에서 난립중인 악마들을 저지하기 위해 마음에 들었던 그 곳 생활을 정리해야했다. 당시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두 명의 인간 지기가 아일랜드와 영국에 있던 터라 떠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스티브에게는 우선시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 어렵지 않게 받은 허락으로 그들이 평안한 일생을 마무리할 수 있게 가호를 내린 대신 그들이 집필 중이었던 소설을 반드시 탈고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미국으로 떠났다. 느리긴 하지만 종종 편지로 소식을 전해 받으며 빠른 시일 내에 그들의 책을 보기를 고대하며 아일랜드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던 중에 만난 여인은 스티브를 고무시키기 충분했다. 심지어 성령의 존재 유무를 알 수 있는 깨끗한 영혼이라니! 모두를 굽어 살피는 신에게 이 기쁨 소식을 알리려던 찰나 스티브는 여인의 몸에서 이상한 징조를 발견했다.


공교롭게도 뱃속의 아이는 육신의 숨은 쉬고 있지만 영혼은 이미 텅비어버린 상태였다. 인간은 천사나 악마에 비하면 지극히 연약하고 혼돈에 가까운 존재라 어느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견딜 수 없었다. 간혹 가다 이런 아이들이 태어나곤 했는데 다 자란 육신은 순수하기 때문에 악이 깃들 가능성도 높아 이런 경우 미리 안배를 하라는 이야기를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들이라면 다 기억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정당한 사유라도 아직 빛도 보지 못한 조그마한 생명을 신의 곁으로 보내는 일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사라 로저스라면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 무엇보다 먼저 뱃속에 있는 아이의 안녕을 빌기를 간절히 바라는 여인을 눈앞에 둔 이상 스티브는 더더욱 차갑게 내칠 수 없었다. 애초에 축복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를 두고 고민하던 스티브는 바로 이어서 지상으로 파견된 천사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권한을 하나 떠올렸다. 그건 바로 상황에 따라 직접 육체를 뒤집어쓰고 인간이 되는 일이었다. 인간들의 법이 불합리하다 말하는 것처럼 천사나 악마라고 별반 다른 건 없었다. 관행이라는 이름아래 고무줄처럼 적용되는 범위는 놀랍게도 스티브가 피력한 주장을 허락했고 그래서 그는 신의 이름 아래 여인의 몸을 빌려 인간의 육체를 얻었다. 물론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조만간 지상에 태어날 혼돈을 불러일으키는 아이를 막기 위함이라는 명목이었다. 인간과 달리 시간적 제약이 없는 이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물론 제약은 존재했다. 그래서 토니가 한 때 연락이 안 된다고 투덜거렸던 그동안 스티브는 인간의 아이로서 무럭무럭 성장하던 중이었다. 물론 천사로서 가장 중요한 기억이나 경험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이능을 쓴다던가, 기적을 발휘 한다던가 같은 일은 없었다. 인간으로서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본래의 정체를 깨닫는 게 바로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는 천사들의 불문율이었다. 한 때 천사였던 토니조차 이런 건 악마보다 지극히 향락적인 유희라고 비꽜지만 스티브는 유감스럽게도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스티브 로저스는 본인이 원래 천사였음을 열 살을 넘기기도 전에 깨달았다. 이례적인 일이라 스티브가 깨닫자마자 즉각적인 청문회가 열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에 섞인 두 남녀의 목소리는 노래 소리와 달리 격렬했다. 인간이 본다면 그저 어린 아이가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이제와 무르기에는 늦었다며 아이의 부모의 신앙심을 믿자는 쪽으로 기울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뚝 끊겼다. 스티브. 그것은 그가 단 한 번도 믿어 의심치 아니하며 헛되이 부른 적 없는 그들의 신의 목소리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의자에 얌전히 앉아 발을 달랑거리던 스티브가 바닥을 내려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졌을 정도였다. 어린 아이라면 결코 지을 수 없는 엄숙한 표정을 한 스티브는 라디오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책을 펼쳤다. 팔랑거리며 넘어간 책장 위로 문자가 흐트러졌고, 평상심을 되찾은 그는 바닥을 울리는 소리에 놀라 문을 여는 제 어머니 앞에 단정하게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우유를 가져다주겠노라 하는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저은 스티브는 다시 그녀가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게 안심을 시킨 뒤 작은 등 뒤로 교묘하게 가린 책을 다시 끌어 당겼다.


언제부터 어린아이의 동화책이 예언서가 됐단 말인가. 몇 백 년도 더 됐을 것 같은 시큼한 포도주 냄새를 맡으며 스티브는 꼼꼼하게 문장을 읽어 내렸다. 말하자면 조만간 이 세상을 어지럽힐 아마겟돈을 일으킬 아이가 태어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브루클린의 가까운 어딘가에서. 언제 태어나는지, 부모가 누구인지 기본적인 단서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 스티브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이내 저에게 내린 임무를 겸허하게 받아들인 스티브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천천히 꼬집었다. 아직 스티브의 육신은 단단하게 완성되려면 멀었고, 보호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를 아이를 위해서 좀 더 인간적으로 강해져야 했다.


“아….”


어렵지 않게 금방 방법을 떠올린 스티브는 이내 성음을 끝낸 책을 덮고 방 한쪽 구석에 쌓아둔 신문 더미를 끌어냈다. 한 시간 뒤에 나가서 팔 석간신문이었다. 전쟁을 끝낸 지 언제 됐다고 또 다시 흉흉한 소리로 가득한 신문 속에서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지원을 독려하는 어떤 광고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랬다, 스티브는 전쟁 영웅이 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그는 어디 있더라? 자연스럽게 토니를 떠올린 스티브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힘의 제한이 많이 풀리지 않은 터라 연락을 먼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그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요 몇 십 년이라는 찰나의 시간동안 연락이 없다 한들 평생 안볼 사이는 아니지만 한동안 그의 변덕스런 상태를 미뤄봤을 때 무시하기도 힘들었다. 그래, 잠시만 참아야지. 아직 또래의 어린 인간 아이들보다 조그마한 제 신체를 꾹꾹 누르며 스티브는 조용히 결심을 확고하게 내리눌렀다.



각설하고 본론만 말하자면 그리하여 스티브 로저스는 미국의 영웅이 됐다. 이렇게 깊게 인간사에 개입할 의지는 없었지만 대부분의 능력이 제한된 채로 뒤집어 쓴 육체는 모체가 성자에 가까웠던 원인인지 아니면 스티브 본디의 성품이 영향을 준 것인지 더할 나위 없이 강인해졌다. 이거야 말로 인간의 연으로 인한 결과이기에 우려와 달리 스티브는 별다른 제지 없이 전쟁터의 앞에 섰다.


이상한 일이지만 스티브는 지상으로 파견될 적만 해도 자신의 삶은 그저 책과 그림으로만 가득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헤이, 거기 잘생긴 천사양반.’이라며 상당히 그답지 않게 고루한 방식으로 인사를 먼저 한 토니를 만나던 순간조차 악마와의 인연이 이토록 길어질 거라 여기지 않았다. 공연히 그의 얼굴이 떠올라 그리워진 스티브는 짬짬이 주어지는 시간마다 그림을 그리던 작은 수첩을 꺼내들었다. 딱 한번 토니의 본모습을 그린 적이 있었다. 그 긴 시간동안 스티브는 누군가에게 피사체가 되길 바란 적이 없었는데 무슨 변덕인지 평소처럼 만나던 카페에 먼저와 앉아 있던 토니를 잡고 말했다. 인간들이 보면 그저 드로잉처럼 자세만 잡힌 그림일테지만 천사의 눈에는 미간을 찌푸리며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오른 악마의 얼굴이 보였다. 사실 그림으로 남기면 좋겠지만 천사나 악마나 진실 된 모습을 보이는 순간 인간은 그 광휘를 받아들일 수 없던 터라 어쩔 수 없었다.


짧은 상념을 끝낸 스티브는 다시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토니와 연락이 되지 않았지만 이 이상 그의 정보를 캐는 건 무리였다. 천년 넘게 지상에서 같이 지낸 만큼 선을 철저하게 지켰던 터라 종족이 다름에도 별다른 큰 일 없이 보낼 수 있던 거였다. 더 깊게 들어가는 건 스티브로서도 상당히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헌데 각오라니, 대체 무얼 말인가? 이어지는 생각에 스티브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 거렸다. 안되지, 지금은 안 될 말이다.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앞으로의 임무에 집중한 스티브는 이번 일이 끝나면 한동안 인간의 육신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육체에 대한 유대감이 깊어져서 이런 인간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일까. 잠시지만 스티브는 이 일만이 아니라 토니까지 전부다 자신 없었다. 정보상에게 넌지시 돌려 토니의 행방을 알아보기로 결심한 스티브는 자신을 알아보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향해 의례적인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거리 속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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